(재)전남인재평생교육진흥원Vol.20

‘내 인생의 첫 봄’

2022년 전국성인문해교육 시화전 글봄상 수상작

학교 가는 모습에 홀딱 반한 내 모습!
우리 동네에 새로 지은 도서관이 1월에 문을 연다. 겨울 햇살이 정겨운 날 곽용심 어르신과 도서관을 살짝 구경해보았다. 아무도 앉아 보지 않은 정원의 벤치에 앉아 사진도 찍고 시화전에 수상한 소감도 함께 나누고 있는데 그 사이를 찬바람이 살짝 스치며 질투를 한다.

소감을 나누다 찬바람을 피해 아늑한 커피숍으로 장소를 옮겼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주문 키오스크가 있었고, 어르신께 직접 대추차 2잔을 주문하시는 글을 아시니 영락없이 잘 하셨다. 복잡하게만 생각했는데 글을 알고나니 참 신기하다며 참 세상이 좋아졌다고 하셨다.

조명 빛이 따스함을 더 주어 마음을 온화하게 하였다. 창가에 자리하여 잣으로 단장한 뜨거운 대추차에 마음도 몸도 녹이며 다시 시화잔 수상 소감을 이어갔다. 소감을 말씀하시면서 아득한 옛 생각에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던 단어 하나하나를 꺼내시며 담담하게 말씀해주셨다.

어린 시절, 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 딸 다섯을 홀로 키우시며 모두 고생하며 살았다고 한다. 열대여섯 살 때는 부잣집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였는데 그 아이가 취학할 무렵이라 부잣집 부모는 벽에 한글을 붙여 놓고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쳤다고 한다.

어르신은 그 때 ‘기역, 니은..’ 그리고 ‘아, 야, 어, 여’ 한 글자 한 글자 몰래 훔쳐보며 글자를 알아가기 시작했는데 했는데 그 집 아이가 병을 앓아 그 일도 더 이상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 이하 곽용심 어르신 인터뷰
우리 집 웃대 할아버지는 종가집 선비였다. 그런데 큰아버지는 여자가 배우면 연애한다고 학교에 못 가게 하였다. 그래서 늘 못 배운 것이 한이 됐다. 사람들이 신문이나 책을 읽을 때는 부러움으로 가득 찼고, 글은 모르지만 남들이 안볼 때 아무 책이나 들고 혼자 고개를 끄득끄득 하며 흉내를 내곤 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면서 성경책을 보고 찬송가를 열심히 따라 부르며 봉사 문고리 잡듯이 쉬운 글자를 한 자씩 알아갔다. 그래서 나는 생활이 넉넉지 못했지만 내 배움을 자식들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 남부럽지 않게 잘 가르쳤다.

그러다 어느 날 장에 다녀오는데 선생님과 학생들을 보였다. 용기를 내서 물어보았고 지금도 배울 수 있냐고 하니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대환영을 하였다. 입학원서를 쓰고 집으로 오는데 가슴이 미어터질 것 같았다.

“오매 이런 일도 생기구나!” 잠도 설쳤다. 너무 즐겁고 행복하고 설레었다. 나도 이제는 학교를 간다고 생각하니 시집왔던 날보다, 첫 애기 낳았을 때보다 더 벅차올르는 기분이었다. 하느님 아부지 감사하다고 수없이 기도했다.

이런 축복이 어디 있을까. 지금은 글도 떠듬떠듬 읽고 책도 건둥건둥 볼 수 있디. 나라에서 문해학교를 만들고 영암군에서 이렇게 학교를 열어서 선생님들 덕분에 깊은 시암 샘물 퍼 올리듯이 공부를 하니 날마다 생일인 것 같다.

공부 한이 이렇게 술술 풀리면서 서투른 솜씨로 좋은 상도 받고. 여기저기서 오매 잘했다고 칭찬도 해주니 기분이 좋았다. 반 친구들 앞에서 수상했다고 선생님이 발표했을 때는 정말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으나 친구들한테는 좀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 턱 낸다고 집에서 직접 찰시루떡도 하고 반잔치도 했다. 남편도, 자식들도 너무 좋아해줬고 며느리는 집안의 경사라고 겁나 많이 축하해주었다. 어머님 고생하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창피한 것 하나도 없고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내 인생에 첫 봄이나 다름없는 글자 비를 내려줘서 또 감사하고, 이렇게 공부 못한 속마음을 털어놓게 해 줘서 너무너무 감사할 뿐이다.

향기로운 차향이 가득한 공간에서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다 보니 꽤 시간이 흘렀다. 곽용심 어르신의 더 나은 세상을 볼 수 있는 즐거운 배움이 계속 되기를 응원하며 건강과 행복한 일상을 기원해본다.

취재 : 전성원 기자(ttl5835@hanmail.net)
[2022년 전남인재평생교육진흥원 스토리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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