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전남인재평생교육진흥원Vol.20

순천 구강마을 문해교육 현장을 가다



순천시 승주읍에서 복숭아로 유명한 월등 방면으로 승용차로 15분 정도를 산길을 향해 달리면 2차선의 구불구불한 길 양쪽으로 진초록 빛 나무들과 약500년 된 보호수가 사람이 뜸한 곳에 찾아온 손님을 반갑게 맞아주는 듯하다. 주변 경치를 감탄하는 찰나 나타난 황금들판이 감탄사의 마지막 점을 찍게 만든다. 여기저기 귀촌을 원하는 도시인들이 발품을 팔며 찾는 명당이라고 한다.

여느 시골 마을과는 초입부터 다르다. 마을 이름이 새겨진 입석이 문패처럼 돋보이고, 이정표를 따라 올라가니 마을 경로당이 있다. 이곳이 구강마을 문해 교실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마을에 사는 주민 10여명의 어르신들이 주 2회 마을을 찾아오는 문해 교사와 사제의 정을 나누며 늦배움의 장을 펼치고 있다.

올해로 2년째 이 마을에서 어르신 학습자들과 문해 수업을 하고 있는 유난주 선생님. 순천시 평생교육과 소속 문해교사로 12년째 근무하고 있다. 선생님은 여성 어르신 학습자들을 만나면 친정 어머님을 만나는 기분이란다. 학습자들이 교사보다 나이가 한 참 많은 건 당연, 우리 현대사의 온갖 질곡을 건너오며 갖은 신산을(세상살이가 힘들고 고생스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겪어 오신 어르신들을 어르고 달래는 솜씨가 경력교사 답다.

"이제는 어머님들은(학습자를 가르킴)는 예전과 달리 배운 사람이에요. 안 배웠을 때랑은 달라야 합니다. 예전에는 남을 욕하고 나만 생각했다면 지금은 배웠으니 욕도 하지 말고 남을 칭찬하는 멋진 어머님들이 되셔야 합니다." 수업 틈틈이 어르신들의 늦깎이 '인성교육'을 강조하는 유난주 선생님.

1교시 수업 후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학습자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니 흔쾌히 응해주신다. 다음은 학습자 중 한 분인 조경자 어르신 학습자(84세)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 죽기 전에 한글을 배워서 내 이름 석자 써보는 것.

구강마을 문해교실 / 조경자 어르신

Q. 어떻게 공부를 시작하게 돼셨나요?

"내가 마을 경로당에서 고스톱치고 놀고 있는데 순천시 평생교육과에서 오신 선생님이 글 가르쳐준다고 오셨소. 처음에는 이 나이에 무슨 공부냐? 하고 말아 부럿는디 일주일에 2번씩 선생님이 오셔서 경로당에서 공부를 시키는데, 이거 너무 재미있고 쉽게 가르쳐주셔서 내가 죽기 전에 한글을 배워서 내 이름이라도 쓰겠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소."

# 지금은 이름도 쓰고, 숫자도 100까지 쓰고

Q. 공부하기 전과 달라진 점이 있으신가요?

"글을 배우기 전에는 이름도 못 썼는디 지금은 이름도 쓰고 숫자도 100까지 쓰고, 전화도 할 줄 알아. 오일장에 가도 넘(남)한테 안 물어보고 시내버스도 탈 줄 안단께."

Q. 자녀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언젠가 숙제를 하고 있을 때 우리 딸이 집에 왔는데 “엄니 시방 뭐하시오?” 해서 숙제하고 있다 했더니 잘하셨다고 하면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결석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더라고."

Q. 공부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 있으신가요?

"올해 스승의 날에 선생님하고 승주읍에 있는 뷔폐 식당에서 식사를 했지. 내가 대접해 드리려고 했는디 글쎄 선생님이 계산을 해불더라고. 내년 스승의 날에는 꼭 내가 대접해 블라요. 서로 인사를 하고 좋은 시간을 가진 것이 생각이 나요."

# 한글 공부, 방학 없이 공부하고 싶소

Q. 공부하면서 힘들었던 적도 있으시지요?

"코로난가 뭔가 때문에 한글 교실이 3년 문을 닫았을 때였소. 마을에 고령 어르신들이 우울증에 걸려 의원에 가기도 하고 또 돌아가신 분도 있고 요양원에 가신 분들도 있는디 다 우울증이 원인이라 하요. 한글 공부도 하고 서로 이야기하고 했으면 지금 함께 공부하고 있을지도 몰라. 기자 양반이 힘이 있으면 한글 공부 방학 없이 공부하게 해 줘. 우리는 공부도 좋고 만나 이야기하는 것도 좋은께."

# "사는 날 동안 열심히 해볼라요."

Q. 마지막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나이 먹어서 공부하니 자꾸 잊어버리게 되고 기억력이 없어 선생님을 힘들게 하지만 항상 웃으면서 가르쳐주셔서 고맙소. 더 열심히 배워 아들 손자들한테 편지를 써보고 싶고 시장님께도 편지를 써보고 싶당께. 우리 할매들이 살면 얼마나 살겄소. 사는 날 동안 열심히 해 볼라요."

​오늘 수업은 "ㅌ"이 들어간 낱말을 찾아 색칠한 후 읽고 쓰는 것과 네모 안에 알맞은 수를 써넣는 것이다.

방금 읽은 글자로 받아쓰기를 하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어르신들의 표정이 긴장으로 가득하다. 시험을 준비하는 어르신들의 긴장된 표정 속에서 평생학습과 평생학생이 오버랩 된다. 나이를 떠나 학생이 된 모습은 어제보다 나은 오늘, 그리고 그 뒤의 날들을 더욱 아름답게 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취재 : 진장환 기자(j7196@hanmail.net)

[2022년 전남인재평생교육진흥원 스토리기자단]

뉴스레터 구독신청

신청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