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를 졸업하고, 전공과 무관한 카페 일을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커피’는 전문인의 영역이 아니어서, 카페에서 일한다고 하면 언제까지 아르바이트만 할 거냐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광주에서 내로라하는 큰 카페의 점장이 되고서야 인정을 받았다. 꼬박 10년을 채워 일하고 나서, 동생과 함께 고향에 카페를 차리게 되었다.
사장이 되면 다 잘 될 것만 같았다. 나는 오래 카페 일을 했고, 커피를 잘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고향에서 시작한 카페 일은 녹록지 않았다. 이미 기존에 자리 잡은 카페들이 있었고, 내 실력이나 커피맛, 10년 경력의 바리스타가 아닌 우리 아빠의 ‘딸’로만 평가되었다. 내가 배운 좋은 커피를, 저렴한 가격에 우리 지역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목표는 온데간데없이 나는 왜 이곳에 카페를 차렸나,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지? 하는 고민이 거듭되었다. 그러자 모든 것이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다. 매일 오시는 손님들도 반갑지 않고 모두 내가 만드는 커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중에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까지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수도권의 확산 추세보다 전라남도 지역은 잠잠한 편이었지만 언제 지역감염이 퍼질지 몰라 뒤숭숭한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마음마저 심란해 이대로라면 카페를 접어야 하나, 생각하던 찰나 친구를 통해 2020 동네방네 배움틈-틈새학습 모집 공고를 알게 되었다.
평생교육진흥원에서 주관하는 데다 지역주민들에게 유휴 공간을 제공하고 그 안에서 학습이 이루어지게 한다는 취지가 좋았다. 처음 우리 지역에 매장을 열 때 가졌던 마음가짐이 떠올랐다.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을 담아 다함이라 매장 이름을 지었던 때. 틈새학습을 통해 지역주민들의 관심을 유도하면 음료를 판매하는 곳만이 아닌 교육을 겸비한 공간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틈새학습과 관련해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일주일의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갔다. 어떻게 하면 학습 내용에 더 흥미를 느끼고 관심 두게 할 수 있을까? 매장에서 커피를 판매하며 하지 않았던 고민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배움틈-틈새학습에 선정된 후, 학습 구성원 모집은 매장 SNS와 매장 홍보를 통해서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분이 문의를 해주셔서 놀랍기도 하고 얼떨떨하기도 했다. 코로나로 위축된 분위기나 오픈 초, 매장에서 자체적으로 클래스를 진행하던 때와는 다른 반응에 새삼 공신력 있는 기관의 힘과 잘 구성된 교육과정의 힘이란 이런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틈새학습과 관련해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일주일의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갔다. 어떻게 하면 학습 내용에 더 흥미를 느끼고 관심 두게 할 수 있을까? 매장에서 커피를 판매하며 하지 않았던 고민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첫 수업 날, 나는 26장에 달하는 학습물을 준비했다. 의욕이 넘친 탓이었다. 간단한 테스트도 준비했었는데, 결국엔 학습물을 읽고 커피에 관해 궁금하셨던 점, 앞으로의 수업 진행 방향에 관해 이야기하고 서로 친해지는 데에 더 시간을 썼다. 틈새학습 구성원들과의 호칭은 자연스럽게 ‘선생님’이 되었다. 정말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을 하시는 분도 네 분이나 계셨고 지역 보건소, 치매안심센터 등에서 근무하시는 분 등, 20대 중반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였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손님 한 분 한 분을 자세히 살피지 않았던 탓에 우리 매장에 와주시는 손님들의 나이와 직업이 이렇게 다양한 줄 몰랐었다.
다양한 연령분포로 서로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기우인 듯, ‘커피’라는 공통 관심사로 매주 만남을 갖다 보니 선생님들과 금방 친해졌다. 수업시간이 끝나도 각자 한 주를 보낸 이야기, 취미 생활, 최근에 가본 좋은 카페 등을 이야기하며 마감 시간까지 있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신기했다. 카페 일을 하며 손님과 이렇게 가까워져 본 적도, 커피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속마음까지 나누게 된 적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카페를 계속해야 하나 고민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한 주 한 주, 수업시간을 기다리며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더 알려드릴지를 생각하는 내가 있었다.
그러다 우리 지역에 첫 코로나 확진자가 생겼다. 광주지역에서 시작된 집단감염이 전남으로까지 퍼져 사회적 거리 두기는 2단계로 격상되고, 그 때문에 선생님들과의 만남도 4주나 미뤄지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매장매출에도 직접적인 타격이 오기 시작했다. 가장 붐벼야 할 점심시간에 비어있는 테이블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당장 매일의 매출을 걱정해야만 했는데, 감사하게도 틈새학습을 함께하는 선생님들께서 도움을 주셨다.
선생님 한 분께서는 초등학교 행사에 쓰일 음료와 디저트 60인분을 일부러 우리 매장에 주문해주기도 하시고, 다른 선생님께서는 점심시간마다 직장 동료들과 함께 매장을 방문해주셨다. 지나가다 들렀다며 음료나 디저트를 사서 가거나, 가족들과 식사 후 함평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집이라 소개하며 와주기도 하셨다. 따로 힘내라 말씀해주신 것은 아니지만 그 마음을 알 수 있었다. 학습할 때만 만나는 사이가 아니라, 진심으로 매장을 걱정해주시고 나와 내 동생을 염려해주신다는 것을 말이다. 덕분에 코로나로 인한 침체 속에서도 무던하게 그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다.
‘틈새’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1. 벌어져 난 틈의 사이, 2. 모여 있는 사람의 속, 3. 어떤 행동을 할 만한 기회’라는 정의가 내려져 있다. 이를 곱씹어보면 선생님들 틈에서 함께 학습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오히려 내 마음속에 벌어져 있던 ‘자격지심’이란 큰 틈이 메워진 것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틈새학습을 통해 선생님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코로나로 상황이 변화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서로를 위하고 걱정하는 사이가 되었을까? 아마 카페 사장과 자주 오시는 손님, 혹은 함께 8주의 학습을 한 겨우 인사 정도를 나누는 사이로 그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의 소중함을 느끼며, 오늘 들려온 사회적 거리 두기 1단계 완화 소식에 코로나가 더 빠르게 종식되기를 바라본다.
막순: 예~~~ 여보시오~~ 여기좀 한번 봐주시요~
동네아짐1: 아, 어쩌그려~~
막순: 사진 한번 박을라 그런게 쪼개 좀 봐주시오.
동네아짐2: 날도 어두운디 선상님 얼릉들어가시오, 우덜은 찬차니 갈랑게로~~
날이 벌써부터 선선해지고 밤이되니, 귀뚜라미가 귀뚤, 귀뚤 울어대고, 밤 새소리도 뾰로롱, 뾰로롱 거린다.
삼다리에 사는 형님들과, 금성면에 사는 민자동생이 가로등을 지나 컴컴한 곳으로 들어가기전, 나도 모르게 불러세워 영상에 담아봤다.
뭣을 얼마나 잘해준것도 없는데, 먼길 마다 않고 밤마실 나와, 놀다 가시는길에, 콧노래를 부르고 가는 뒷모습이 정겨워보여, 나도 모르게 찡한 뭣인가 밀려오고, 저 장면을 놓치기 싫어 부리나케 찍었다.
농촌에 사니 다들 새벽같이 일어나, 딸기농사다 뭐다 허리한번 못피고 일만하다 식구들 저녁진지 얼릉 차려주고, 장구 선생 만난다고 냅다 달려오셔서, 장구좀치고 노래 좀 하다 가시는 길이다.
장구치는 솜씨야 그저그렇지만, 그래도 끼와 흥은 남보다 못하진 않는다. 노래라고 해도, 요즘 노래 못부르고 가사도 다 모르지만, 절대 기죽지 않고 목청을 올린다.
옛날 우리네 어머님들이 낮에는 밭일을 하고, 저녁에는 물레를 돌리며,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표현하고 그러셨다든디 역시, 우린같은 조상의 핏줄을 이어받았단 생각이 확실히 든다.
그런데 오늘은 양순 형님이 안오셨다. 낼모래새 아들이 장가를 가는데, 코로나땜시 어쩔가 싶어 함부로 못다니신다한다. 저번주는 남순언니가 아버님이 지병이 있으셔서 골골 하신디, 코로나가 무섭다 하여 빠지셨다. 이래저래 빠지니, 형님들의 수다는 줄어들었지만 대신 코로나 이야기는 이제 다 박사급이다. 어디서 환자가 나왔는데 그리가면 안되고, 어느놈이 코로나를 옮겨서 이지경이 되었네, 언제 끝날까 싶네 등의 수다가 장구친 시간 보다 더 많을라 한다. 사실은, 하루종일 일만하다 녹초가 되어서도, 땀을 씻고 장구치러 오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지만, 이제는 이것을 못 할까 걱정이 앞서는가 보다.
장구 선생인 나도, 속으로는 걱정이 앞선다. 가르쳐준 노래를 잊어먹고 와서가 아니고, 얼굴을 자주 못보니 아무래도 흥이 식어가는가 싶다. 남들처럼 비대면 수업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답답한 마음에 진흥원 홈페이지도 들어가보고, 문화재단도 들어가보고 여기저기 ‘코로나’단어가 들어간, 공지사항을 눈여겨 본다. 갑자기 모르던 단어들도 엄청나다. 언택트 시대니, 팬데믹이니, 확찐자니 등의 단어들을 보며, 코로나로 인하여 엄청난, 시대의 변환기에 있단 생각이 든다. 장시간 흘러가는, 사회적 상황속에서, 나는 두려워만 하지 말고, 돌파구를 나름대로 찾아야 겠단 생각을 해본다.
일단 코로나로부터 나와 주위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겠다. 가장 쉬운 방법은, 나는 마스크를 두장을 한다. 천마스크는 세탁하여 청결하게 쓸수 있으니 안쪽에 하고, 일회용 마스크를 그위에 덧착용한다. 이제는 형님들도 마스크는 생활화 되셔서, 꼭 착용을 하시고 오신다. 또한 예전에는 열명이 한번에 수업을 했으면, 지금은 나누어서 수업에 참여를 한다. 나름대로 본인들이 결정을 하시어 편이 아닌 편으로 갈라졌지만, 공간이 넓어지니 편안해 하신다. 체온계도 이젠 본인들이 직접 체크하신다.
‘줌’은 나에게 생소하지만, 그래도 한 두번의 워크샵에 참여 해보니 나름 재미도 있었고, 호기심도 생기어 호스트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 형님들도 벌써 누가 말하는걸 들었는지 비대면 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구사 하신다. 비대면 수업을 상상해보니 그림이 그려진다. 처음에는 마이크도 못키고 그러시겠지. 하지만 우리는 장구만 배우는게 아니라, 동아리를 통하여 누구네집은 어떻다, 누가 어쩌드란다 등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공동체 이기에, 이러한 새로운 문화도 같이 도전 해보는것도 의의가 깊을 것 같다.
또한 이 기회에‘학습동아리의 의미를, 다시 정리를 해보고도 싶다. 동아리의 기능이 꼭, 기능을 익히는 단체가 아니라, 이제는 같이 사는, 배려하는 공동체의 의미로 정의를 하면, 비대면의 만남에서 오히려 더욱 새로운 공동체감이 형성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을 못만나니 오히려 더 절실한 그리움이랄까? 실제로 서로 만나면서 티격태격 하시던 분들이 요즘은 자주 못 만나니 아쉬운가 보다. 더 살뜰이 챙겨주는 걸 보았다. 우리는 사람이든, 음식이든, 물건이든 너무 풍요로운 세상에 살았는가도 싶다. 바로 엊그제 까지도 그때가 행복했는지 모르고 살았기에, 지금은 오히려 더 숙연해지고, 빈곤함속에서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 생기는 것 같다.
어차피 문화예술은 예로부터 배고파야 한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지 않는가. 이 난국을 잘 헤쳐나가면, 나도 진정한 예술가 소리를 들을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며 오늘도 나는 형님들께 안부를 물어본다.
막순: 형님, 장구에 곰팡이 피것유~~
동네아짐3: 긍게 말여, 어째야 스까잉~~~ 통 못가서 노래도 다 잊어부럿어.
막순: 뭘 어쩌유, 지가 비설거지 다 해놨응게, 아무 때구 와서 한번 두들다 가유~~
코로나가 없던 지난해 12월, 저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결혼하고 2년반을 기다려왔던 아기를 만났던 순간, 이제 내가 엄마가 된건가라는 기대감과 함께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앞섰습니다.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엄마니까, 엄마라서 다 아는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걸 아는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기를 안는법부터 아기가 언제 배가 고픈지, 왜 우는지에 대해 배워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되고나서 저의 배움의 길은 시작되었습니다. 아기를 위해 해주고 싶은게 너무 많은 제 마음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기가 100일도 채 되기 전, 코로나가 나타나 이 세상을 멈춰버렸습니다. 아기와 함께 다니려고 기대했던 문화센터도, 육아강좌도 모두 잠정 휴강에 들어갔습니다. 아기 예방접종을 위해 나서는 외출도 꺼려질만큼 바깥 세상에 무서워졌습니다. 아기를 위해,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기대했던 제 계획들이 다 수포로 돌아간 듯 하였습니다.
외출도 하지 못한 채 아이와 집에만 있는 시간들이 늘어갔습니다.‘코로나블루’가 제 얘기인 것 같아 남편에게 제 고민에 대해 얘기하였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코로나 때문에 학생들도 학교안이 아닌 집에서 온라인 비대면 학습을 하는 시대인데, 우리도 필요한 것을 인터넷을 찾아 배워보자고 말해주었습니다. 육아법, 아이 발달에 맞는 놀이법 등 저는 왜 문화센터에서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코로나19로 학생들도 집에서 비대면 수업을 한다는 기사를 수없이 들었는데 저도 그렇게 배울 수 있을거란 생각은 왜 못했는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언택트 학습이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직접 배워서 아이와 남편과 함께해 보자!” 문화센터의 수업, 강좌도 참 좋은 프로그램이지만 인터넷, 유튜브 강의 역시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에 육아강좌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TV에 나오는 전문가들의 강의를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기가 자는 시간을 틈타 강의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필요한 부분은 메모도 하고, 추천해주는 육아책에 대한 정보도 얻고. 아기를 키우면서 긴가민가했던 부분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에는 나만 이런게 아니었구나 하는 위로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작은 취미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홈트 유명 유튜버의 영상을 보며 남편과 같이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자세도 몇 번 반복하니 이젠 제법 익숙해졌고, 육아로 쌓인 육체 피로를 운동으로 해소하는 법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기 마사지도 배워 아기와의 교감을 늘리며 밖에 나갈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 보았습니다.
배움의 가장 큰 장점은 자기 만족와 새로운 동기부여인 것 같습니다. 좋은 엄마가 되고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온라인 학습은 인문교양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지인의 추천으로 보게된 법륜 스님 강좌부터‘세바시’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입니다. 15분간 각계 각층의 저명인사들이 본인의 인생에 있어서의 키워드를 가지고 하는 강좌를 보며 아기가 자는 틈틈이 인문학에 대한 감성도 일깨울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배움을 통해 활력을 갖게 되자 아이도 그것을 알았는지 더 예쁘게 웃어주는 것만 같습니다. 임신을 하고 직장생활을 그만두게되어 한동안 멈춰있었던 제 세상이 다시 열린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평생교욱이 멀리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배운 운동도, 인문교양 강좌도, 아기가 뱃속에 있었을 때 했던 태교도 모두 평생교육이었습니다. 태교부터 시작해서 노년까지 배우는 모든것이 평생교육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 이제야 와닿습니다.
처음 수기 공모전을 보았을 때 집안에만 있었던 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아 망설였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열정을 가지고 배우는 모든게 평생교육이라는 확신에 이렇게 용기를 내어 글을 적어봅니다. 누구나 가르치는 선생님이 될 수 있고, 누구나 배우는 학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쉽게 밖을 나가는 것도, 배우고 싶은 수업을 수강하는 것도 어려운 요즘 스스로 관심있고 흥미있는 일들을 찾아보고 배우면서 느끼는 그 기쁨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나눌 수 있는 즐거움을 다른 분들도 많이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기가 더 크면 제가 배운 것 중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깊이 공부해서 다시 사회생활을 하고싶다는 욕심도 생겼습니다.
하루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기를 바래봅니다. 아기에게 시원한 바람을, 따스한 햇살을 마음껏 쐬게 해주고 싶습니다. 아이가 마스크 없이 맘껏 뛰놀며 배울 수 있는 세상, 배우고 싶은 것을 마음껏 배울 수 있는 그때를 기다리며 글을 마칩니다. 평생교육에 힘써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가족과 이웃을 만나지 못하는 이상한 나라를 상상해 본적이 있는가?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생각조차도 해 본적이 없는데 지금 이 순간은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잠깐 멈추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줄 알았던 일상은 아직도 기약 없이 흘러가고 있고, 최첨단의 시대를 살아간다고 자부하던 우리는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당하며 그보다 더 작은 존재감조차도 느껴지지 않는다.
성인문해교육을 하는 나는 2020년 2월 초, 마스크를 쓰신 어머님들께 코로나19로 인해 며칠 쉬었다 다시 수업하러 오겠노라 하고 발길을 돌렸는데 그 며칠은 몇 달이 되고 말았다. 지난 6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한글선생만 기다리는 어머님들이 계셔서 산등성이를 몇 개씩 넘어 수업을 하러 다닐 때도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어머님들을 만나지 못하게 되니 어딘가 모를 허전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우리 군에서는 약 40여명의 성인문해교육 강사가 있는데 그 선생님들은 나름 이 문해 교육에 자부심이 있는 분들이라 수업에 대한 금단 효과는 모두를 공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군청에서 기획했던 민화그리기 사업을 우리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하겠다고 하여 신청하게 되었고 수업을 하기 위해 준비하던 분들이 수업을 받는 학습자가 되어 함께 모이게 되었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수업은 비 대면으로 이루어져야했고 그래서 수업에 참여하려면 밴드에 올라온 동영상을 들어야하고 온라인 화상회의에 참여할 줄 알아야 했는데, 처음엔 나이가 있으신 선생님들이라 과연 이 민화 수업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문해 교육의 부재가 만든 일상의 공허함은 어떤 걸림돌도 막을 수 없는 듯 너무나도 수업에 잘 참여하셨다.
나 또한 그림에 소질도 없거니와 익숙지 않은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으며 과연 내용을 잘 이해하고 따라할 지에 대한 막연함과 걱정이 있었는데 의외로 혼자서 수업을 들으며 집중도 잘 되고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다보니 온라인 수업이 나름 장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수업을 며칠 늦게 듣는다고 작품을 못 그렸다고 훈수 두는 이가 없으니 게으름을 부리거나 살짝 빠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민화를 그리고 수업이 올라온 동영상 밑에 댓글로 본인의 작품을 숙제처럼 올리면서 강사님의 조언도 듣고 다른 선생님들의 그림도 감상하며 서로를 응원하면서 함께 힘이 되기도 하였다.
뉴스에 보면 학교의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면서 집중도가 떨어지고 학력격차가 많이 나서 중간층이 없어졌다고 하던데 나는 이 민화수업을 들으면서 역시 우리 선생님들과 같은 늦깎이 학생들은 우리 어머님들이 문해 수업을 받으실 때 그러했듯이 수업의 집중도가 어린 학생들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는 것과 새로운 재능을 찾을 수 있는 기회였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이제 마지막 강의만 남겨놓은 이 시점에 그동안의 시간이 모두 다 즐거웠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붓을 잡는 손이 떨리고 색이 마음대로 칠해지지 않아 만족할 수 없었던 순간보다 그림이 완성되고 바라보며 아쉬움과 뿌듯함을 동시에 느끼는 그 순간이 코로나블루를 이기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군청에서 문해 교육이 너무 오랫동안 시행되지 않아 고민을 하다 학습꾸러미를 만들어 수업을 재개하게 되어 어머님들께 전달하고 왔다. 그동안 전화로 안부만 여쭙다 완벽하진 않지만 수업을 할 수 있어서 어머님들도 좋아하시고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민화수업도 받았으니 내년엔 어머님들께 한글뿐만 아니라 민화도 가르쳐 드리면서 그림과 관련 된 이야기도 나누고 더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볼 것을 상상해 본다.
직업전문학교에서 교육 상담 업무를 담당했던 저에게 ‘구직자’ 및 ‘실업자’라는 용어는 무척 익숙했습니다. 저 또한 언제든지 근로자에서 실업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약 19년 만에 저는 2020년 4월, 처음으로 장기 실업자가 됐습니다.
근로를 하지 않고 직장을 잃어버린 실업자가 된 순간 이 세상에서 버려진 쓸모없는 인간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재취업을 위해 바로 구인 시장을 살펴보았지만 제 4차 혁명이 도래한 현 시대에 발을 맞춰서 동행하기에 저의 역량은 녹슬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이례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구직 시장은 꽁꽁 얼어있었습니다.
과연‘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을까?’‘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이 시기에 과연 재취업이 가능할까?’등. 이러한 질문을 되새기며 저를 돌아봤을 때 희망 직종 및 적성에 맞는 직무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의 적성과 성향에 맞는 희망 직무를 찾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야 할까? 궁금증을 갖고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직업으로 ‘직업상담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목포 권내에 직업상담사 교육과정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유일하게 전남인력개발원이었습니다. 더불어 ‘과정평가형’과정이었습니다. 실무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교육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의 앞날의 길을 밝혀 주는 데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단 한 번도 근로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기에 과정평가형 교육기간 5개월은 저에게 엄청나게 긴 터널을 지나는 여정과 같았습니다.
과거 근로 당시 발급받은 국비 지원 전용 계좌제 카드 ‘내일배움카드 (현 국민내일배움카드)’를 이용하여 교육과정을 신청하였습니다.
일일 6시간 교육시간과 총 100일의 교육일정으로 구성된 과정평가형 과정이다 보니 내부평가 및 외부평가 등 쉼 없는 평가 과정을 통해서 저의 역량을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와중에 교육과정이 6~70% 진행되는 시기에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대폭 증가하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교육과정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수업에 임했습니다.
그러나 교육과정을 수료한 후 자격증을 취득한다고 해도 코로나19 전염으로 인해 구직자 채용기관이 대폭 줄었다고 연일 뉴스에서 보도가 되고 있어서 재취업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연일 계속 됐습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저 스스로를 도태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 시국을 잘 견뎌내고 버텨보자는 신념으로 참여했습니다.
교육과정에 참여한 20명 훈련생들이 한결같은 마음이었고 그래서 더더욱 개인위생을 철저하게 지켰으며 교육기관에서도 입․퇴실 시 발열체크를 통해서 예방에 힘썼습니다. 교육생 퇴실 후 매일 소독을 진행하여 안전에 만전을 기하였습니다. 모두가 한결같은 마음에서 교육과정에 참여해서인지 2020년 09월 04일까지 무탈하게 훈련을 수료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NCS를 기반으로 한 자기소개서 작성을 요구하는 기업이 늘어났기 때문에 만발의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과정평가형 직업상담사 교육과정 중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작성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많은 연습과 반복을 통해 NCS를 기반으로 서류를 작성하였고 드디어 희망하는 기관을 찾아 구직 지원을 하게 됐습니다. 저는 얼어붙어 있는 구직시장을 과감하게 돌파하여 국가 교육기관에 재취업을 하게 됐습니다.
실업자가 된 상황에 본 교육과정까지 참여하지 않았다면 코로나 19로 인해 막혀 있던 구직시장이 더욱 힘들게 다가왔을 겁니다.
직업훈련기관에서 제공하는 훈련과정들은 재취업을 도모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또한 평생교육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과정평가형 직업상담사 과정을 수료함으로써 알게 된 적성에 맞는 직업 찾기, 재직 후 사후관리, 최근 이슈 되고 있는 전직 및 은퇴 상담까지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이 됐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의 생활 및 삶은 전면적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언제 종식될 지는 누구도 가늠할 수 없고 일상생활 속에서 ‘감기’와 같은 흔한 바이러스 질병으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의학계에서는 예견합니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이러한 현실을 벗어나거나 바꾸려는 노력보다 기지를 발휘하여 현실에 적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응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평생교육’은 필수요소입니다.
‘평생교육’을 통해 전 국민이 지혜로운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고, 국가적 차원으로 적극적인 홍보를 통하여 전 국민 누구나 ‘평생교육’을 접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퇴직한 지 벌써 5년째 접어들고 있다.
인생 제2막을 나름대로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퇴직 2년 전부터 전남대 평생교육원에서 운영하는 야간 강좌를 듣기고 하고 불교영상대학을 다니면서 봉사하는 삶을 꿈꾸기도 했다. 또한 농부의 삶을 염두해 두고 전원생활을 위해 시골에 텃밭을 마련하여 틈나는 대로 흙과 더불어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퇴직하고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아내와 함께 해외배낭 여행이었다. 언어에 대한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최소한 영어회화라도 익혀보려고 우리 시에서 운영하는 영어회화반에 들어가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끈기가 부족한 탓인지, 학교 다닐 때 배운 문법 중심의 영어가 문제였는지 발음 교정이 쉽지 않아 주변에 민폐까지 끼치는 상황이 되었다. 영어로 대화를 하고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즐거움이 아니라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회의감이 들어 중도 포기하고 외국어 번역 어플에 의지한 채 여행을 떠났다.
힘든 여정이긴 했지만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느꼈던 자연에 대한 외경감, 인간에 대한 한없는 연민 등은 오랫동안 내 마음깊이 자리 잡아 인생 2막의 좋은 자양분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때 인내심을 가지고 영어회화를 좀 더 익혔더라면 보다 윤기 있는 여행이 되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오랫동안 남아 그 뒤로는 평생학습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수강하였다.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배우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살아오면서 내가 가장 좋아 하는 단어 역시 학생이라는 단어이다.
평생학습의 일환으로 우리 시에서 운영하는 농업대학에 다니면서 어렴풋이 농업에 대한 안목도 갖게 되었다. 특히 작년에 공부한 도시농업과정은 텃밭농사에 관심을 갖는 많은 도시민들에게 매우 유익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쌈채소 한 잎이 그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 돌보듯 농부의 땀과 정성의 결실임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정보화 시대에 보다 능동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정보화 교육에도 참여하여 동영상 제작도 해보고 블로그도 만들어 보면서 작은 보람을 느껴보기도 했고 문화원에서 개설한 풍물 반에서 풍물을 익히면서 이웃과 함께하는 공동체 삶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매달 한차례 있는 봉사활동에도 참여하였다.
작년부터는 동네강좌로 개설된 논어 반에 등록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 연로하신 분들과 함께 고전에 대한 안목을 높이고 있다.
한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어 지도하시는 선생님의 해석에 의존하는 수준이지만 자칫 이웃과 소외되기 쉬운 아파트 생활에서 서로 소통하며 많은 활력을 얻는 것 같아 은혜로운 마음으로 오늘도 열심히 배우고 있다.
요즈음 코로나로 인해 우리의 일상생활이 많이 흐트러진 것 같다. 우리 아파트에도 많은 편의 시설이 있는데 코로나로 인해 중단 사태가 이어지다 보니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아 도서관 사서직 역시 비게 되어 지난 7월 말쯤 사서를 공모한다는 공고를 보고 서류를 냈는데 다른 지원자가 없어 졸지에 사서를 맡게 되었다.
시급 8590원에 하루 3시간 근무하는 조건이었다.
오후 시간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낼 수는 없을까하고 생각하던 나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미증유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나는 코로나로 인해 새로운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8월부터 근무를 했는데 한 달도 안 되어 코로나 2단계 격상으로 도서관이 폐쇄되어 휴직 상태에 있다가 얼마 전 다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전반적인 코로나 분위기로 도서관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고 언제다시 폐쇄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이지만 틈나는 대로 작은 도서관에 관련된 책을 살펴보고 운영방안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구상을 해보기도 한다.
작은 도서관 설립 취지에 맞게 단순히 도서 대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면서 때로는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주부들이 아이들과 함께 시장 다녀오는 길에 잠시 편한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을 꿈꾸어 보기도 한다. 물론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재정적 뒷받침도 있어야 하겠지만 사서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자긍심을 가지고 도서관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리라 다짐도 해본다.
우리 시에서는 일찍부터 평생학습에 많은 관심을 갖고 여러 형태의 교육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배움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어느 때라도 다양한 강좌를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 얼마나 기쁘고 고마운 일인가. 이런 시책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고 원인에 대해 진지한 성찰도 해본다.
우리 이웃의 많은 분들이 아직도 생업에 종사하는 현실에 삶의 여유를 갖지 못한 탓도 있지만 이제는 평생학습도 양적 팽창보다는 질적인 개선이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많은 강좌가 무료로 운영되다보니 배움을 소홀히 하는 면도 있는 것 같다. 최소한의 수강비라도 받아서 교육내용을 좀 더 밀도 있게 구성하고 새로운 강좌들을 끊임없이 발굴하는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코로나로 인해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활기 넘치는 일상으로 돌아올 그날을 소망하면서 ‘學而時習之 不亦悅乎’라는 논어 첫 구절을 읊조리며 ‘곱게 물든 단풍은 꽃보다 아름답다’라는 말을 위안삼아 오늘도 쉼 없는 배움에 나선다.
저는 제과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유명 제과점과 호텔에서 제빵사로 근무하고 십 여 년 제과점을 경영하다가 뜻이 있어 신학을 하고 지금은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2017년 3월 1일자로 강진으로 발령을 받고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제가 잘 할 수 있는 빵을 만들어 나누기로 했습니다. 매주 사랑의 빵을 만들어 군에서 운영하는 천사들의 나눔방에 기부하고 이웃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합니다. 지난 5월, 몇 년 전 귀농하여 딸기농장을 하는 부부가 있는데 우연히 우리가 나눈 빵을 받고 감동하여 자신의 딸기 하우스 세 동의 딸기를 기증하였고, 우리 동아리회원들은 딸기쨈을 만들어 천사들의 나눔방에 빵과 함께 기증하였습니다. (이분들은 수시로 나눔 등 봉사활동을 하고 자신의 이익보다는 이웃을 돌아보는 분들로 지역사회에 선한 감화력을 주는 분들입니다.)
이렇게 빵을 나누다 보니 빵 만드는 것을 배우고 싶다는 분들이 있어 홈베이킹교실을 계획하고 매주 1회 재능기부로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작년에는 강진군 배달강좌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귀농·귀촌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홈베이킹교실을 하게 되었는데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수강인원도 10명으로 조정하여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지침에 따라 발열체크하고 매시간 마스크 착용하고 불편했지만 열심히 과자도 굽고 빵을 만들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보람이 있었습니다. 또 자기들이 만든 과자와 빵을 이웃과 나눠먹고 남편과 손주들에게 주었더니 잘 먹는다고 웃음꽃을 피우며 후일담을 해주니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을 이용하여 빵과 과자를 만들어 나누고 나아가 귀농인들에게 소득창출이 되기를 소원해봅니다.
지난 여름, 전남지역에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정으로 집합이 금지되고 대면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이 중단되니 그동안 해왔던 일상이 이제 과거 속 추억이 되어버린 현실이 참 안타깝게 생각이 되었습니다. 빵 만드는 것도 봉사회원들이 와야 가능한데 혼자서는 벅차고, 천사들의 나눔방도 문을 닫아서 빵을 만드는 것은 잠시 쉬기로 결정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방관할 수는 없는 일이라 생각을 달리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삼육이미용집수리봉사단원으로 주로 방충망을 고쳐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빵 만드는 것은 전문가지만 방충망을 뜯고 자르고 붙이는 일이 처음이라 서툴렀습니다. 그러나 봉사회원의 지도를 받고 이제는 익숙하게 봉사활동을 합니다.
회원중에는 수년간 이발소를 운영하신 분도 있고, 대도시에서 유명 미장원을 운영하던 이도 있어 올해는 회원들이 좀 더 기술을 익혀서 봉사하려고 했으나 코로나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동안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다니던 이미용염색 봉사도 갈 수 없게 되자 수요자가 생기면 봉사회원들이 개인적으로 가서 이발봉사를 하였습니다. 단톡방에 소식을 공유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봉사활동은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신청을 받다보니 산발적이고 수요자와 횟수도 적어서 읍사무소 복지과와 복지관에 수요자 추천을 요청하고 군청 홈페이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알리고, 봉사활동이 필요한 분들은 신청하라고 올렸습니다.
읍사무소와 복지관에서 연결해준 어르신, 군청 홈페이지를 보고 연락해 온 주민 등 다양한 계층에서 연락이 오면 일정을 조율해서 2명, 때로는 혼자라도 방충망 교체봉사를 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어느 요양보호사의 요청으로 도암면에 있는 독거노인 댁을 방문할 때입니다. 방충망인가 싶을 정도로 다 찢어지고 얼기설기 대충 기워놓은 양파망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4시간 동안 방충망과 씨름하고 창틀에 끼워 넣었더니 미안해하며 감사해하는 어르신을 뵈니 34도를 육박하는 폭염도 장대비 같던 땀도, 모기가 얼마나 물었는지 두 다리가 도깨비 방망이처럼 퉁퉁 부풀고 가려웠지만 견딜만 했습니다. 지금은 봉사활동 나갈 때 긴 팔에 긴 바지를 입고 모기기피제도 뿌리고 봉사활동을 합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자영업자들은 수입이 줄어들고, 농수산물은 소비가 저조하고, 부모님이 요양원에 계시는데 대면 면회도 안 되고 ‘코로나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길정도로 국민 대다수가 우울증에 노출되어 있고 봉사활동이 필요한 곳에서는 두려움으로 봉사활동이 중단되고 거의 대부분의 일상을 바뀌었지만 둘러보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많이 있습니다.
저는 다섯 살 무렵 오른쪽 눈을 다쳐서 시각장애인이 된지 약 50년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학교에서, 평생교육을 통해 배우고 익힌 것들, 뛰어나지 않은 작은 저의 능력과 재능을 나누고자 합니다. 대가 없이 남을 위해 봉사할 때 우리의 뇌에서는 행복호르몬인 엔도르핀 분비가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엔도르핀은 행복감을 줄 뿐 아니라 뇌혈류도 개선하며, 신경세포 보호 효과가 뛰어나다고 하니 코로나로 불안하고 희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할지라도 우리의 작은 봉사가 또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씨앗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평생교육 지도 강사로 활동한지 20여 년이 넘었습니다. 평생교육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곳에서 아동부터 노인대상으로 노래, 춤, 웃음치료, 소통, 치매예방놀이, 레크리에이션, 그림책 감정코칭 등의 강의를 해 왔으며 평일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열정적으로 재능과 끼를 즐겁게 전달하며 바쁘게 생활 해 왔던 행복한 일상이, 뜻하지 않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2월부터는 모든 평생학습기관에서 안전을 위한 조치로 평생교육이 안타깝게도 휴강 상태이며, 감염 예방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졸지에 백수가 되어 수입의 급감과 넘쳐나는 시간들로 생활이 불규칙 해 졌으며 개강 일을 알 수 없는 기나긴 휴강에 평생교육 강사로서의 열정과 활력은 저하되어 가고 야외 활동조차도 자유롭지 못한 일상은 지루하고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루함도 잠시, 생각을 달리하여 휴강기의 여유 있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모색하였고 유익하고 알찬 성과를 낼 수 있는 평생교육 프로그램 연구 개발에 몰입하여 교육 열정에 탄력과 배움을 부활시켰습니다.
2011년부터 순천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강좌를 개발하여 진행해 왔으며 전남평생교육진흥원의 배움디딤돌 배달 강좌 4곳을 진행하여 실효를 거둔 적이 있기에 코로나19 사태의 집콕 생활을 자기개발을 위한 학습의 계기로 삼았습니다.
이런 자세로 준비 하던 중 광양시에서 찾아가는 평생교육 배달강좌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접하게 되었고 시민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원하는 시간, 장소에서 자발적인 참여로 진행되는 학습으로써 강사의 역량을 맘껏 보여 줄 수 있는 평생교육이므로 반듯이 도전 하여 성과를 내고 싶은 의욕에 잔뜩 설렜습니다.
평생교육 배달강좌 프로그램에 선정되기 위해서는 평범하고 흔한 강좌 주제보다 차별화 된 강좌로써 효율성이 높아야 하므로 오랫동안 평생교육의 현장에서 보고 느꼈던 노인 강좌의 문제점을 바탕 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노인 대상 강좌의 대부분이 치매예방과 건강 증진 여흥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고 있는 점과 아동과 청소년 대상의 책 관련 프로그램은 많지만 실버 세대 눈높이에 적합한 책과 관련 된 프로그램이 없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라고 느껴 왔었습니다.
노인층은 책을 거의 보지 않아 표현력과 글쓰기에 서툴러 세대 간의 소통이 더디며 독서하면 글자가 많은 두꺼운 책을 떠올리는 인식 개선과 동화책은 아이들이 보는 책이라는 인식 역시 개선하여 책이 누구에게나 재미있는 놀잇감이 되도록 계몽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획한 “어른 동화구연과 책 놀이 글 놀이”강좌는 동화책이 주교재이며 어른이 읽어도 주제와 교훈이 분명한 흥미로운 내용의 동화책을 선정하여 책 내용과 연관된 손 유희와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가미한 유쾌한 진행으로 책이 지루한 것이 아닌 재미있는 놀잇감으로써 흥미로운 동화구연 시연과 느낌 피드백과 동화구연 역할극을 체험하며, 동화 내용의 소재를 직접 접고 오리고 붙이고 만들어 보면서, 독후활동으로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로 자연스레 유도하여 인지, 언어, 심리 표현, 신체활동 등의 다양한 영역 체험은 사고력 향상과 치매예방에도 일조되며 도서관 출입 경험이 없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최근 개관한 도서관의 다양한 시설을 둘러보는 견학 체험활동을 병행하여 도서관 이용법과 도서관의 분위기를 직접 느껴보며 도서관의 개념 이해를 돕고 싶었습니다.
더 나아가 책 놀이 학습에서 익힌 동화구연을 마을의 어린이집에서 실전하며 배움이 봉사로 이어지도록 기회를 가지며 평생 교육을 통하여 교양을 쌓아 지역에서 존경받는 어르신의 품위 향상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여러 날 동안 기획한 강좌의 학습자와 학습장소로는 마을의 단합이 우수한 광양시 진상면 지랑 마을을 섭외하여 마을 어르신들 대상으로 모의 학습 체험은 호응도가 높았으며 특히 이장님께서 우리 마을에서 진행되기를 바라며 꼭 선정되도록 응원 해 주셨고 야심차게 응모했으며 여러 지원 강좌 중 10개 강좌만이 선정되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결과를 기다리며 노심초사 한 끝에 선정되었음을 알리는 문자는 매우 짜릿했습니다.
현재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2단계로 조치로 인하여 수업 시작이 더디지만 효과적인 학습준비를 완료하고 지랑 마을에 웃음꽃을 활짝 피울 날만 고대하고 있답니다.
두껍고 글자가 많은 책과 그림이 없는 책은 보기도 전에 거부 반응을 보이며 특히 노인대상은 동화책을 교재로 놀이라는 영역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독서가 백세 시대에 맞춰 고령층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가 되려면 앉아서 읽게만 하는 독서가 아닌 놀이처럼 활동 체험과 재미있는 유쾌한 분위기 안에서 레크리에이션 학습으로 거듭나야하며 어르신 대상 책 놀이 강좌가 대중적인 프로그램으로 널리 보급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 사태로 출강도 못하는 현 상황에서 나를 찾는 기존 강좌가 아닌 새로운 강좌 개설을 통하여 평생교육 강사로서 쇄신하는 유익한 성과를 이루어 자부심이 충만한 합니다. 코로나 19 사태로 인한 휴강 기간에 나태함을 슬기롭게 극복 해 배워서 남 주기를 실천하며 대한민국의 평생교육 발전에 미력하나마 보탬이 되도록 급변하는 시대에 맞는 효율적인 강좌 개발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는 강사로 거듭나겠습니다. 힘든 시기의 평생교육 강사님들 파이팅입니다.
행복해야한다.. 나, 그리고 우리모두는. 삶이 선사한 귀한 시간의 선물을 안았으니까 말이다. 불행이라 생각하면 얼른 행복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별일이었다, 별일! 세계가 안고 있는 흉물바이러스 코로나19가 우리삶을 덮쳤다. 삶이 한꺼번에 엎치락 뒤치락 소용돌이치고 혼란에 빠트리더니, 그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내는 방법을 찾아내게 되더란다. 코로나19가 정말 별일들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어느덧 그 별일들은 일상의 일들이 되고 말았단다.
난 귀촌 5년차, 다행히 고흥은 다른 지역에 비하면 코로나19로부터 해제된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확진자가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고흥으로 내려온 것에 큰 감사함을 느껴간다. 고흥은 내게 가족을 선사해주었고 친구들을 만들어주었다. 그 계기가 여기 고흥평생교육관이 제공한 평생학습과정이란다. 난 지난 50년동안 갖지 못한 특별한 배움을 여기 고흥평생학습수업을 가졌다. 그리고 새로운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인생의 또다른 즐거움과 흥을 안아간다는 것이었다.
난 평생교육관에서 난타수업과 요리수업에 빠지지않는 모범학생이란다. 성적순위로 따지면 어쩜 난 꼴지이겠지만, 열심히 하는 자랑스런 개근생이다. 솔직히 난 부엌일과 요리에는 담을 쌓고 살았던 도시 커리어우먼이었고, 음식은 늘 받는 것에 익숙한 것이고 관심밖의 영역이었다.
소문난 요리초보, 흥을 많지만 부릴줄 모르는 중년이다.. 요리수업에 요리선생님은 늘 나에게 창작품을 만들어낸다고 야단도 하시고, 그래도 그것이 곧 미소를 짓게 하고 춤추게 했다.
새로운 요리 배움에 대한 긴장감과 기대감은 늘 설레임이 되었고, 돌아오는 배움의 시간이 신나는 순간이 되어갔다. 요리초보인 내가 그것도 전라도의 이름난 선생님으로부터 배움 얻는것도 영광이었고, 요리수업으로부터 원만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해 갈 수 있었다.
그러게 요즘은 세상 좋아져서 SNS활동이며 메신저 세상아니던가! 수업뿐만이 아니라, SNS소통은 관계의 정들을 쌓아주게 되더란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상향되던 날, 학습은 중단되었단다. 지속되는 집콕 생활동안은 어쩜 이 관계로부터 주고받은 비대변 소통방식에 의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무나 큰 힘이 되고 따스한 위로가 되지않았던가 싶다.
암튼 코로나19생활도 익숙해지고 거리두기 실천은 일상이 되며 우리의 삶을 채워간다. 천연조미료 특강이던 날, 그야말로 화려한 외출이 되었다. 물론 매 시간의 배움이 이젠 더 특별한 외출인 셈이 되었지만 말이다.‘젓갈고추장과 된장’만드는 행복요리배움터를 향해 예쁜 꽃무늬앞치마 챙겨서 교육관을 행했다. 우리 요리선생님께서 공수해오신 고흥 태양초 고춧가루, 메주가루, 그리고 각종 전라도 액젓들과 조청, 나머지 재료들을 준비해 놓으셨다. 수업 함께한 베테랑 주부인 친구는 집 매실청까지 가져와서 나눠주었다.
휘이..휘이.. 고추장 재료 모두투하하고 팍팍 섞으며 드디어 요리선생님 주걱놓으시더니 몽땅 손으로 통크게 저으시더란다. 내겐 그 모습이 전문가의 포스, 명인의 기술아니던가! 그저 눈으로 보고 경험하는것만으로도 전라도명인이 된듯한 황홀한 자극과 특별한 기쁨을 얻어갔다.
그렇게 만드는 것 자체가 ‘힐링’이 되고 있음을 알았단다. 가족들을 향한 정성가득 요리하는 여인들의 시간이 요리시간었다. 한낱 고춧가루와 메주가루가 명품 고흥고추장으로 탄생시키는 충만한 시간을 만들어 내고, 우리 모두는 삶이 선사한 그 귀한 시간에 최선이고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안은 듯 소중하기만 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시간은 여전 이어지고 있다. 힒듬과 고난의 시간을 낳았지만, 그래서 내적으로는 앞으로 우리가 누리는 삶을 얼마나 지혜롭고 감사해하며 살아야 하는 것도 반성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평생학습도 코로나19시대 이전만큼 자유롭지는 못하다. 확진자가 다시 급증하면 중단되고 혹은 비대면 온라인수업으로 전환되는 미래도 상상이 되니 말이다. 그래서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예방실천규칙을 열심히 따라간다. 그리고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된다. 요리학습에서 잘 배운 덕분에 집콕에서도 정성 안은 음식들 만들어 내면서 코로나19로부터 지친 시간을 지혜롭게 회복시킬 수 있었던 시간. 난 다시 꾸준한 배움의 시간을 안아가며 더 나은 삶을 희념한다.
누군가 그러더라.. “피할 수 없으면 즐겨가라”고. 코로나19가 완전히 물러가기전까지 우리 삶은 코로나19 환경과 함께 꺽이지않을 유연함으로, 여전 식지 않을 열정가득한 맘으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학습하며 세상살이 힘차게 안아갔으면 한다.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고숙련 일학습병행(P-TECH)」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단어이지만 일학습병행이라는 직업능력교육 분야에서 근무하며 보고 느낀, 이 속에서 아름다운 동행을 하고 있는 20살, 21살 청년들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려고 한다.
2014년 정부에서는 산업체 중심의 현장 교육을 위한 새로운 직업 교육 모델로 산학일체형 도제학교를 도입하였다. 특성화고 학생들이 학교에서는 이론을 배우고, 기업에 나가서는 현장 중심의 실무를 배워 졸업 후에 해당 기업에 취업까지 연계하는 과정이다.
도제학교 졸업 이후에는 기업에 채용되어 핵심인재로 성장함은 물론 전문학사 취득 과정인 고숙련 일학습병행(P-TECH)까지 참여할 수 있어 학사 학위 취득은 물론 병역특례 업체일 경우 병역 특례까지 받을 수 있다. 고숙련 일학습병행(P-TECH)에 참여하는 학생은 주중에는 업무를, 주말에 학교에 나와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학기가 시작되고 주말에 등교한 학생들은 주중에 쌓인 피로와 한창 놀고 싶은 나이의 유혹 때문인지 처음엔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교수님들과 전담자들이 지속적인 대화와 관리를 통하여 학생들을 조금만 잡아주니, 의지가 있는 학생들이라 확실히 달라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1학년이었던 학생들이 2학년이 되고 새로운 신입생들이 들어오는 시점에는 2학년이 된 선배들이 신입생들의 적응을 도왔다.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이 어울리며 자연스레 멘토링이 형성되었고, 후배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하면서 대학을 다닐 수 있는 장점, 자신이 경험한 성취감과 높아진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를 후배들에게 들려주면서 후배들의 적응을 도왔다. 학생들의 적응 및 기술 향상은 회사에서도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효과로 나타났다. 중장년층이 대부분이던 중소기업 제조업의 현장에서 젊은 근로자들의 입사로 인하여 사내 분위기가 밝아지고 또한 후배들을 잘 이끌기 위하여 기업의 선배 기술자들도 책을 들고 공부를 하며 학습 분위기 조성이 자연스럽게 되면서 회사가 변화하고 있다. 배움의 전파력이었다.
언젠가 한 학생과 이야기 나눈 것이 기억에 남는다. 고등학교부터 또래 친구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데 어떠냐고 물었을 때‘물론 놀고 싶지만 이런 제도 덕분에 얻는 것이 더 많다고. 더 많이 얻기 위해 이 정도 하는 것은 고생도 아니라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오히려 친구들은 대학에 다니며 놀면서 돈을 쓰고 다니는데 본인은 회사에서 숙식도 제공 해주고 주말에 학교를 나와서 배울 수 있어 다른 친구들보다 저축도 많이 할 수 있다고.
“2년 후엔 대학 졸업으로 학위도 받고, 병역특례로 군문제도 해결이 되니 다른 또래 친구들에 비해 얻는 것이 많아요. 다른 사람들과 출발점이 다르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할 것도 많지만 나중에는 얻는 게 더 많잖아요. 배우는 것도 많구요”
그러면서 후배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계속 배움을 이어나갔으면 한다고 했다. 자신이 느낀 것을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좋겠다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까지 대학에 나와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면 나 자신의 20대를 돌아보고 현재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한창 놀고싶은 나이지만,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배워나가는 어린 친구들. 코로나19로 힘들기만 한 이 시대에 이렇게 건강하고 밝은 에너지를 가지고 배워나가는 친구들이 있어 우리의 내일이 더 밝아지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