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9할머니 품처럼 따뜻한 자연 속의 가족 마을 곡성군 삼기면 월경리에서는 밤이면 어르신들의 책 읽는 소리가 동구 밖까지 울려 퍼진다. 마을회관에서는 10여 명의 어르신들이 매주 목~토요일 저녁 6시면 어김없이 모여 앉아 정건일 문해교육 선생님의 지도하에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초집중하며 한글과 수학, 미술 등을 배운다.

이들 대부분은 어린 시절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또는 여자라는 이유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르신들이다. 평균 연령 80대 중반의 어르신들은 자음과 모음부터 익히기 시작한 늦깎이 학습자들이지만 배움의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뜨겁다. 어르신들은 글을 배우면서 더욱 당당해지고 세상과 소통하는 기쁨을 깨닫고 새로운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


수강생 중 최고령인 추순정(97세) 어르신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어 교육 2년을 받은 것이 전부였다. 수업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신다고 한다. 딸네 집에 가 있다가도 수업 하루 전날이면 집으로 돌아오신다는 어르신은 “수업 있는 날이 제일 행복하다. 죽는 날까지 공부를 할 것”이라면서 10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정정하신 건강의 비결에 대해 한글교실에 꾸준히 나오는 것을 꼽았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글을 읽고, 쓰고, 그림 그리고 숙제도 하려니 치매도 예방되고 늙을 새가 없다. 곡성군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줘서 감사하다”며 활짝 웃으신다.


정건일 선생님은 “여러 가지 이유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르신들은 수업 참여도가 대단히 높다. 새롭게 배우는 내용에 집중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끼고, 즐겁게 공부하실 수 있도록 분위기 조성에 힘쓴다. 어르신들에게 생일잔치를 해줬을 때, ‘자녀들도 잊고 지나가는데 선생님께서 챙겨 주시니 너무 고맙다’며 거친 손으로 잡아 주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반장을 맡고 있는 송미향(83세) 어르신은 노래를 좋아하신다고 한다. “모든 과목이 재밌지만 노래 시간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 가르쳐 주는 것을 맨날 잊어버려도 선생님은 내색하지 않고 반복해서 잘 가르쳐 주신다. 회관에 나올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선생님 칭찬을 하신다. 옆에 계신 어르신들이 반장님의 노래 솜씨가 최고라고 하는데, 수업 중이어서 노래는 다음 기회에 들어보는 것으로 미뤘다.


이맹순(84세) 어르신은 2024년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학교는 즐거워’라는 시화작품으로 전남인재평생교육진흥원장상을 수상했다. 어르신은 “6.25 때 오빠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가 충격을 받아 집안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어린 시절을 힘들게 살았다. 평생 못 배운 게 한이 되었는데 글을 배우고서 택배도 보낼 수 있고, 농협에 가면 출금전표도 자신감 있게 쓸 수 있게 되었다.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았는데 요즘은 글을 익혀가는 재미에 살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한편, 곡성군미래교육재단(이사장 조상래 곡성군수)은 2006년 교육부로부터 평생학습도시로 지정된 이후 비문해 성인에 대한 단계별 마을로 찾아가는 성인문해교육을 운영해 왔다.
올해도 평생학습을 통한 지역사회 통합 및 학습 분위기 확산을 위해 지난 1월 6일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군에서는 문해교사 양성과정을 거친 19명의 교사를 28개 마을로 파견해 309명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주 3회, 2시간씩 다양한 교육과정을 실시하고 있다.
오늘도 회관에 가기 위해 하던 일을 멈추고, 책가방을 챙기고 있을 어르신들의 용기와 열정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해 본다.
취재: 박정희 기자[2025년 전남인재평생교육진흥원 스토리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