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전남인재평생교육진흥원Vol.23

무안 오승우미술관, 세밀화로 지역민들에게 힐링

‘ 행복나눔 미술교실로 물빛 아름다움 선사해’

“선생님. 형태따는 것도 쉽지 않네요” 한지와 모필(한국화 붓)을 이용한 꽃 그리기의 처음은 베껴서 형태를 잡는 ‘형태따기’였다. 프린트된 인동초에 먹지를 덧대 한지에 옮긴 후 물감으로 색을 입히는 작업이다. 형태따는 과정이 만만찮아 수강생들의 앓는 소리가 여기 저기 들려왔다. [행복나눔교실 프로그램]은 2019년 시작, 코로나로 잠깐 공백기간을 거쳐 올해 다시 도입된 작가진행 수업으로 4회 차에 걸쳐 배우고 익혀 완성하는 활동이다.

손재주도 없고 미술에 재능도 없는데..라고 생각하는 지역민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고자 첫 회는 포슬린 아트로 시작했다. 기대이상의 적극적인 참여를 몰아 8월에 시작한 세밀화 교실은 말 그대로 세밀화이다. 세밀화라는 단어는 식물이나 동물 그림책의 그림 기법이기도 해서 초보자인 내가 가능할까? 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는데... 웬걸 이 수업의 지도를 맡은 박수경 작가는 재능과 함께 오랜 경력과 성실로 초보와의 호흡이 어렵지 않다.

초보마저 놀라게 만드는 결과물을 안기는 비법은 따로 없지만 매 수업마다 외치는 것 하나. “지금 즐거운 것이 예술이고 미술이에요.”

처음 붓을 칠할 때와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될지라도 스스로가 좋아하는 색을 발견하고 덧바르는 그 순간을 즐기는 것. 그걸 일깨워 주는 것이 무어라고 수강생들의 채색에는 점점 자신의 색을 만나 찬연한 꽃들로 물들여 갈까.
"시간 진짜 잘 간다"
열심히 붓을 덧바르던 한 수강생의 목소리. 모두가 다 그 말에 끄덕끄덕이며 다시 자신의 작품으로 눈을 돌렸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부터 이제 막 첫 아이를 임신한 젊은 임산부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수강생들은 저마다의 이유와 환경으로 이 귀한 시간을 함께 하고 있었다. 잔잔한 피아노의 선율이 공간을 부드럽게 감싸고 물감에 향이 있으랴마는 옅게나마 물빛 향기와 어우러진 오후. 나른한 햇살이 비추었다. 인동초의 꽃잎들과 잎사귀의 모양새가 이랬구나. 정성스레 쥔 붓은 풀 바른 듯 놓질 않으니 두 시간이 쏜살같다. 한지 재질이 가지는 특성인 물이 과하면 번지고 물이 적으면 표현이 부자연스러운 간극을 깨치다보면 과히 작품의 완성은 한지가 다 한 듯.
행복나눔 미술교실은 재료에서부터 부담감보다는 여유를, 잘하겠다는 마음보다는 즐거움을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한 작품 한 작품 기성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된 2층 전시실 맨 끝에 위치한 작업실은 그래서 뿌듯하다. 작업실 입구에는 전년도나 그 해의 지역민들의 작품이 소소하게 전시되는데 비슷하면서 이색적이고 서투르면서 곱다. 발걸음이 멈추는 이유는 너와 나 비슷한 사람들의 흔적이 사랑스러워서. 그저 지나치기에는 이 작품, 너무 내가 한 것 같아 라는 동질감이 기꺼워서이다.
그렇다.
우리 삶은 예술스럽다.
눈만 들어도 온통 색의 향연이 펼쳐진 땅과 하늘은 어찌나 생생한지. 거기다 사계절의 신비로운 변화들은 생명들의 호흡을 따라 일상 깊숙이 엮여 있는데, 어떻게 예술이 삶과 무관할까. 비슷한 일과표에 묶여 무미건조해져 살다가 어느새 굳어진 돌 같거나 그럴 위기에 처한 성인들이 넘친다. 새벽감수성만큼은 아니더라도 뜻밖의 새소리에 귀 기울이며 빙그레 웃을 수 있는 촉촉함은 삼시세끼 밥만큼이나 중요하다. 밥이 일할 노동력과 힘의 원동력이라면 감성은 일하려는 동기, 마음의 중심축이나 마찬가지. 내가 속한 환경과 지역에 대한 소중함을 깨치고 누리는 것은 일할 맛이 나게 한다. 더 잘 살아갈 나를 응원하는 힘이 된다.
살맛과 멋이 조화로운 이 곳,  오승우미술관은 이름에서 내포하듯 오승우 화백의 유지가 담긴 곳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신 오승우화백의 작품기증 의사로 미술관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으며, 오승우 화백 작품의 재산적 가치와 무안군의 예술문화 인프라자원 확보로 창조도시 건설의 기반을 구축하고 문화예술의 발전을 촉구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특별히 좋은 점을 꼽으라면 하나는 접근성으로 무안지역 뿐 아니라 목포와의 거리가 멀지 않다는 점이다. 초의선사라는 명소 더하기인 셈. 거기다 몇 년 전 리모델링을 마친 1층 카페 공간의 변신은 지역민들의 발걸음을 재촉케한다.

코로나 시국에는 맥도날드나 스타벅스의 드라이빙 스루 방식을 도입하여 온라인으로 신청을 받은 후 미술키트를 나눠주었다. 지역민들의 순수 미술에 대한 관심과 미적 함양을 높이는 등의 지속적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중학교 학생들 대상, 다양한 진로에 대해 여러 가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교과 시간 일부를 예체능 활동에 집중하는 자유학기제와 연계했다. 지금까지 50여 개 학교가 참여하는 등의 청소년들을 위한 예술 활동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자, 이제 뒤로 모아 볼께요.”
자명종도 아니고, 작가님의 한 마디에 나른한 오후를 만끽하던 손이 바빠졌다. 눈에 긴장이 서린다. 미처 완성하지 못한 채, 작품들끼리만 모았다. 유달리 부족하다 싶었는데 같이 두니 그럭저럭 태가 나 보이는 건 착각이려나. 시간이 있었다면 인동초 향기까지 은은히 풍겼을 명작이 탄생했을 텐데 싶다가도 붓 잡은 손가락을 펼치니 후덜거린다.

savoring:세이버링 (향유하다)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천천히 음미하며 누린다는 말로 전시회, 와인, 차, 풍경들과 여행의 목적이 되기도 하는 이 단어는 얼마전 읽은 여행관련 책에서 알게 됐다. 느끼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마음껏.

그런 의미에서 무안군의 오승우 미술관에서의 배움은 현실이되 현실을 벗는 향유의 시간이었다. 지금 발 디딘 주변과 지역을 아끼며 살아가게끔 만족이 차오른다. 수강생들끼리 서로의 작품을 보며 잘하셨다. 수고하셨다. 첫 작품이 훌륭하다며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말도 없이 붓만 놀려서 얼굴 마주한 것도 처음인데 마냥 흐뭇했다.
새삼스레 깨닫는 건,
똑같은 인동초는 여기 없었다. 모두가 같은 재료, 같은 가르침이여도 이렇게나 다른 결과를 품에 안듯, 같은 시간, 같은 하루를 보내지만 천차만별의 이야기와 희노애락이 있을테다.
모두가 누릴 순 없더라도 시간이 없어서, 먹고 살기 바빠서, 몰라서라는 핑계 댈 수 없이 시간대별로 다양한 활동들이 그득하고 정성껏 준비한 수업들에 호응하며 참여하면 좋겠다. 편만한 활동들로 너도 나도 살맛들 나라고.

취재 : 진성경 기자(jinsg@hanmail.net) [2023년 전남인재평생교육진흥원 스토리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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