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전남인재평생교육진흥원Vol.18

‘명랑한 오토바이 아저씨’가 받아든 졸업장

-제2회 진도군 문해학교 졸업식-

가장 젊은, 유일한 남자 졸업생
진도군은 지난 6월 9일 오후 진도읍 모란복지문화센터 교육원에서 성인문해학교(초등과정) 졸업식을 가졌다. 지난해 3월 제1회 졸업생 70명을 배출한데 이어, 제2회 졸업생 31명에게 학력인정서와 졸업패 등을 수여한 것이다. 진도군은 “코로나19 거리두기와 6·1 지방선거 일정 등으로 졸업식이 늦어졌다.”고 밝혔다.

이동진 군수는 연로한 졸업생들 좌석 앞으로 일일이 이동하면서, 전라남도 교육감이 발행한 초등학력 인정서와 진도군에서 주는 졸업패를 전달하고, 졸업생들과 문해교사들에게 축하와 격려의 말을 전했다.

“참으로 감동스럽고 감사한 졸업식입니다. 졸업생 31명 중에 80세 이상이 무려 26명이고, 이중에는 낼모레 백수를 바라보는 90세 이상이 8명이나 됩니다. 그 열정과 도전에 박수를 보내고, 또 이분들과 함께 아름다운 헌신을 해주신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이어 이동진 군수는 한 졸업생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특별히 오늘 가장 젊은 졸업생 한 분을 소개합니다.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남다른 용기가 필요하였을 것이고,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였을 유일한 남자 졸업생 곽준구 씨입니다. 다들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오토바이 아저씨’
졸업식이 있던 다음날, 곽준구 씨(68세)를 따로 만나 인터뷰를 했다. 사실 그와 기자는 구면이었다. 진도군에서 기능직으로 정년퇴임을 한 그가 한글 공부할 곳을 찾다가, 기자가 강의하던 진도군 노인복지관 문해학교까지 오게 되었다. 당시 진도군 노인복지관 문해학교는 졸업반이어서, 그가 기초부터 공부할 수 있는 곳으로 안내를 해주었는데, 이번 졸업식장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진도와 같은 농촌 지역의 성인문해학교 학습자들은 결석 없이 공부를 이어가기가 녹록지 않은 일이다. 특히 학습자 대부분이 80세 전후의 여자들이고 남자 학습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소위 ‘남자 어른들’은 나서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다. 그래서 그를 만나기 전에 함께 공부한 몇몇 학습자들에게 물밑 취재를 해봤다.

“아, 날마다 오토바이 타고 공부하러 다니는 젊은 아저씨!” “결석도 안하고 어찌나 열심히 하는지 공부도 젤 잘해요!”

그는 사철 오토바이를 타고 등하교하는데, 결석도 하지 않고 성격까지 긍정적이어서, 다른 학습자들과도 즐겁게 지낸다고 했다. 인터뷰 의사를 타진했을 때에도 주저없이 허락하였다. 뒤늦게 공부한 자신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져도 부끄러울 일 없다며 말이다.

남들 학교 다닐 때 양조장 막걸리 배달

진도 소리꾼 아들이었지만, 어려서부터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다니는 일은 일찌감치 접어야 했다. 어머니까지 일찍 돌아가시고 외할머니 댁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열두 살이 되자 그는 주조장에 취직해서 호구지책을 세웠다. 매일 막걸리 다섯 말씩 자전거에 싣고 배달하는 일이 힘겨웠지만, 부지런하고 성실한 천성으로 주변의 신망을 얻었다. 나중에는 경운기로 막걸리 배달을 했다.

그러던 스물두 살 때 지금의 부인을 만났다. 아내는 8남매 집 맏딸이었는데, 처가에서는 ‘가난한 데다 배움도 없고 직장도 변변치 않은’ 그와의 혼사를 반대했다. 하지만 그의 근면 성실과 착한 심성, 그리고 두 사람의 사랑으로 결혼을 했다. 가난과 배우지 못했다는 아픔은 늘 가슴속에 쌓이는 응어리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처가 동네에 살면서 농사에 공장 막일 등 부부는 열심히 일하며 아들 둘을 키웠다. 그러던 30대 중반에 진도군에 취직을 했고, 도로정비며 환경미화원과 청사 관리 등의 일을 했다. 비정규직이었지만 특유의 성실함으로 열심히 일했고, 그 결과 5년여 만에 기능직으로 전환되었다. 기능직 공무원이 된 지 7년여 2002년에는 군청 뒤에 조그마한 집을 지어 ‘내 집 마련’의 소망도 이루었다.

청사 관리도 하고, 오토바이 타고 다니면서 언론사에 보도자료 돌리기와 우편물 관리 등의 일을 하다 보니, 글을 모르는 가슴속의 응어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때로는 고등학생 아들에게 글을 배워보려고도 했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퇴직하고 시작한 한글공부, 끝을 보고 싶다

이제는 욕심 없이 살만하다. 두 아들은 가정을 이루어 서울 근교에서 살고 있고, 공직 근무 20년 만에 퇴직하여 연금도 받는다. 밭도 400여 평 마련하여 짬짬이 농사도 짓고, 몸 사리지 않고 살아오는 동안에 오토바이 사고로 왼편 팔다리를 다쳐 불편하기는 하지만, 휴일이면 부부가 집안에서 꽃도 가꾸고 산에 다니면서 나물도 뜯고 ‘재미지게’ 산다.

그래도 가슴 한구석의 허전함은 가시지 않았다. 배움을 향한 어려서부터의 소망 때문이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하다 보니 뜻밖에 가까운 데에 한글학교며 문해학교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굳이 진도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여전히 그의 발이 되어주는 오토바이로 공부하러 다닐만한 곳이 이웃에 있었던 것이다.

함께 하는 남자들도 없고 연로한 여자들뿐인데, 공부하러 다니기 어렵지 않던가요?
“군청에 근무하면서도 글을 모르니까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럭저럭 살만하기는 해요. 그런데 인터넷이네 스마트폰이네, 세상이 하도 정신없이 바뀌니까 안 되겠더라고요. ‘내가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이 있잖아요? 일단 공부에 맛을 들이니까 부끄러움도 어려움도 없더라고요.”

공부를 하니까 캄캄한 어둠이 가시면서 밝은 세상이 펼쳐지는 것 같아 좋더라 했다. 선생님이 가르쳐주는대로 소리 내어 읽고 쓰고, 받아쓰기 하면서 틀린 글자 바로잡고, 집에 와서도 밤늦게까지 읽고 쓰면서 파고들었다.

“아직 받침 있는 글자가 어렵기는 해도, 부끄러움 무릅쓰고 시작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공부하는 게 재미있고 좋아요.”

어렵게 초등과정 졸업장을 받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가요?
“공부를 계속해야지요.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공부하는 게 즐거우니까 끝을 보고 싶어요.” 인터뷰하는 내내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진도군은 지난 2012년 관내 50개 마을에 한글학교를 개설하여 750명의 비문해자들에게 학습 기회를 제공해왔다. 그해부터 해마다 가을이면 ‘진도군 한글학교 백일장’을 열어 학습자들이 글솜씨를 자랑한다. 2015년에는 한글학교가 137개 마을로 확대되었다가, 2022년 현재는 77개 마을에서 481명이 공부를 하고 있다.

특히 2018년에는 문해학교(초등과정) 8개 반을 개설(학습자 125명, 문해교사 15명)하여 2021년에 첫 졸업생 70명을 배출했다. 두 번째 졸업생 31명을 배출한 2022년 현재는 진도군 7개소 문해학교에서 89명의 학습자들이 공부하고 있다.

취재 : 김영만 기자(moktak0408@hanmail.net) [2022년 전남인재평생교육진흥원 스토리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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