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전남인재평생교육진흥원Vol.19

80세 할아버지의 블로그 도전기

나는 4년 전부터 담양에 귀촌해서 살고 있다. 매일 아침 산어귀 운무의 향연·새와 풀벌레 소리·계절별로 피어나는 야생 꽃·하루하루 달라 보이는 나무의 성장·야생초와 작은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를 수확해 먹는 즐거움, 내가 좋아하는 꽃을 심어 감상하기, 풀멍(풀을 뽑고 있노라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줄 모른다.)하기 등은 그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값진 자산임에는 틀림이 없다. 귀촌 후 나의 삶의 만족도는 500 정도 더 상승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 마을에서 농사하는 농민들의 농산물이 그들의 노고에 비해서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SNS를 배워 마을 분들의 농산물을 홍보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침 작년 7월에 ‘대덕면 자치위원회’에서 주최하는 블로그 유튜브 교육에 학습자로 2개월간 참여했다. 군 단위에서 정보화 교육(디지털 교육)은 항상 읍에서만 진행한다. 담양군은 디지털 교육을 ‘담양 농업기술센터’에 의뢰해서 진행하는데 주로 낮 시간대에 교육이 이뤄져서 제대로 참석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대덕면은 담양군의 끝자락에 위치 해있어서 17km 국도를 달려야 갈 수 있다. 특히 밤 교육일 때는 가로등도 없는 좁은 길을 30분 이상 걸려서 오간다는 것이 무척 부담스럽다.

대덕면은 담양군의 다른 지역보다 평균 기온이 3도가 낮다. 농민들은 하우스 농사가 어려운 관계로 전통농사에만 매달리다 보니 농가 소득이 비교적 낮다. 이 문제를 풀어보고자 대덕면 자치위원회에서도 ‘대덕 알림’을 목표로 SNS 교육을 시작했다.

SNS 교육에 참여하는 10여 명의 중년 학습자들은 ‘농어민들 디지털 교육의 전문가’ 김용근 강사님께 배웠다. 그런데 그 안에 눈에 띄는 분이 보였다. 바로 80세 어르신이었다. 그 어르신께서 젊은 사람들을 배려하는 언행과 행동이 인상적이었다는데 2개월 교육 내내 결석 한 번 하지 않고 꾸준히 나오셨다. 그 당시 나는 블로그에는 문외한 이어서 수업 진도가 어렵게 느껴졌는데 말이다.

중년의 나이에 2개월간 배운 SNS는 겨우 간질간질 한 느낌만 있을 뿐 ‘이것이야’라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그 당시 과학기술 정보통신부에서 진행하는 ‘디지털 배움터’ 사업이 있었다. 디지털 소외계층과 그 외 디지털 교육을 희망하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다. 나는 학습자들에게 이 교육을 소개하고 이어서 SNS를 더 배워 확실하게 알면 어떤지 묻자 다들 좋다고 했다.

물론 어르신은 당연히 반가워하셨고 당신이 잘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은 강사님이나 내가 거들어드리면서 블로그를 만들어 글을 올리기로 했다. 우선 ​어르신께서 사용하는 노트북이 오래전 손자가 준 태블릿 크기의 것으로 용량과 기능 면에서 작동이 원활하지 않아 강사님께 부탁해서 중고 노트북을 구입했다. 나는 어르신께 양봉장의 사진과 사진에 곁들일 글을 공책에 정리해오게 했다.

어르신의 단어나 문장은 고전적이고 우아하다. 어르신이 블로그 글 쓸 때 수정이나 보완이 좀 필요해서 "어르신, 이것 이렇게 바꾸면 어때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선생님 생각이 더 맞아." 혹은 "그래그래 그것이 더 좋네."라며 나의 의견을 받아주신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당신 스타일의 단어나 문장이 더 좋다고 주장할 때도 있다. 매 순간 공책을 옆에 놓고 가르쳐드리는 내용을 기록하신다. 댁에서 복습하신다고. 젊은 사람들도 잘 하지 않는 복습을 80세 어르신이 하신다. 가끔 한 번씩은 "내가 모두 까먹어버렸네. 기억이 안 나요. 다시 배워야겠어요."라며 긴장된 얼굴로 나오시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신다.

중년인 나도 금방 한 일이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며 핸드폰이며 자동차 열쇠 찾는 날이 부지기수인데, 1년 넘게 꾸준히 배우시고 발전해가는 어르신을 보면 존경심이 절로 우러난다.

이렇게 블로그 쓰는 것을 배워서 당신이 직접 생산하시는 자연 숙성 꿀을 팔아 노년의 용돈 벌이를 스스로 하고싶다고 하신다. 내가 사 먹어본 꿀 중에 가장 깊이가 있고 진실하게 느껴지는 자연 숙성 꿀이다. 값도 진실하게 책정해야 한다며 비싸게 받기를 원치 않으신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시는 어르신은 여가시간에 젊은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정말 행복하시다고 한다. 내년쯤에는 어르신의 꿀 농장 블로그의 방문객이 많아지길 간절하게 빌어본다. 나도 어르신 같은 노후를 꿈꿔본다.

어르신 블로그 내용 중


디지털 배움터 교육 덕분에 
작년 겨울부터 담양 대덕면 면민의 집에서 네이버 블로그 일주일에 한 번 교육 참여 중....
컴~~엄 앞에서는 나~아~무~ 늘~보오~ 
문법은 무시하고 발음 나는대로~~~
돌아서면 금세 깜장.....


강사님들 손가락은 번~개~ ...
그냥 포기...?아니야 80년도 살아왔는데 얼마 남지 않았으니. 
꾸준하게.. 밤에도 자다 말고 열공 중
오전에는 양봉 일하고 더운 오후에는 강사님 근무처로... 빈대 붙기
내가 생각해도 우스워요


취재 : 양홍숙 기자(hongsook2@hanmail.net)
[2022년 전남인재평생교육진흥원 스토리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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